전 국회부의장 홍사덕 그는 누구인가

2020. 6. 19. 11:56오늘의 이슈

홍사덕 

홍사덕은 친박의 대표이자 16대 국회 국회부의장을 지냈습니다. 
1943년 경상북도 영주 출신으로 국회의원 6선을 한 녹록치 않은 인물입니다.

젊은시절 홍사덕과 이건희


영주국민학교, 영주중학교, 서울대 사대부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대학 재학중 해병대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고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였고 민주정의당 오한구와 같이 당선되었습니다. 
지역구는 영주시,영풍군,봉화군,영양군이었습니다.


12대 국회의원 선거인 1985년에는 신한민주당 후보로 11대 국회의원선거와 동일한 지역구로 출마하였고 2선을 지냈습니다.
신한민주당 총재인 이민우의 오른팔이었으며 이민우 총재가 1986년 12월에 발표한 정국 구상의 아이디어를 홍사덕 머리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1988년에는 13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이태섭에게 밀려 낙선하였습니다.
1990년 꼬마민주당 소속이 되었고 야당이 통합되면서 민주당으로 옮겨졌습니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3대와 같은 지역구인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였고 3선을 지내게 됩니다.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진영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하였습니다.
1992년 12월18일에 선거가 실시되었고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8.2%로 차이로 이겨 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김대중 후보는 실패하였지만 홍사덕의 세련된 어휘력과 활약은 이미지를 바꾸었습니다.
호남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김영상후보가 승리하였습니다.
홍사덕은 94년~96년까지 환경노동위원장을 하였습니다.

995년에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낙선하였습니다. 그 후 새정치국민회의당으로 당을 옮겼고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강남구 을에 당선되어 4선을 지내게 됩니다.
1997년에는 정무제1장관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소속 의원이 장관이 된 전례는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김영삼 대통령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였습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강남구 을을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물려주었고 오세훈은 여기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시작하게 됩니다. 홍사덕은 전국구(지금으로 말하면 비례대표) 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홍사덕을 통일부 장관에 기용하기로 하였으나 2000년 갑자기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2002년 서울시장 경선에서 이명박과 붙었고 낙선하였습니다.

 


2005년에서는 경기도 광주시 공천에 떨어져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정진섭 후보와 붙어 떨어졌습니다.


2007년에는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고 이 덕분에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서구 국회의원이 되었고 이 때가 6선이 됩니다.


그 후 2012년 19대 국회의우너선거에서 서울 종로구 새누리당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정세균에게 패하였고
2017년 정계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년동안 몸이 좋지 않다가 2020년 6월 17일 별세하였습니다.

기타 내용으로는 홍사덕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고등학교 동창이며 절친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5년에 나온 이민우 구상은 언론자유 보장,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등을 인정해주면 전두환 정권을 따르겠다라는 내용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주장한 것은 의원내각제였습니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에 의해 이민우는 정계은퇴를 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에 약간의 의원내각제가 섞여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